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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기념물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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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 사우충주시 신니면 신청리(충주 ~서울간 3번국도, 용원에서 우측으로)
수청골에 있는 정면 3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조선시대의 사육신의 한 분인 박팽년(1417 ~ 1456)을 모신 사당으로 숙종 신미(1691)년 건립한 것을 1968년에 건물이 낡아 고쳤다.
이 사우는 정면3칸,측면2칸의 목조 팔작집으로 흙과 돌을 섞어 담장을 둘렀으며 입구에 일각대문(一角大門)이 있다.사당건물 정면에는 현 위치에서 약 20m 떨어져 있던 건물을 1977년에 다시 이전 복원한 솟을 삼문의 충신문이 있는데 중앙칸에 박팽년의 충신지문편액이 걸려 있다.

 
**** 박 팽 년

박팽년 사우조선 세조 때  사육신 중 한 분이시고 그의 부조묘가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에 있다. 박팽년은 태종17년(1417년)에 태어났으며, 세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삼문 등과 더불어 집현전에 소속되어 한글 창제에 많은 공을 보탰었다.
그는 성품이 침착하고 말이 적었으며 소학으로 몸을 지켜서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의관을 벗지 아니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이 절로 나도록 하였다.
경학, 필법, 문장 등이 모두 능하였으므로 집현전의 여러 학자들의 집대성이라 하였다고 한다.
단종 3년(1455) 6월 세조가 왕위를 물려 받았을 때 박팽년은 경회루 못에 빠져 죽으려 하였으나 성삼문이 굳이 말리며 "이제 왕위는 비록 옮겨졌으나 임금께서 아직 상왕으로 계시니 우리들이 살아있다가 기회를 보아 다시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 때 죽어도 늦지 않으니 오늘 죽는 것은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여 박팽년은 그 말을 따랐다. 그 뒤 성삼문 등과 상왕의 복위를 모의했었으나 얼마 뒤 박팽년은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나가게 되었다. 다음해에 형조참판이 되어 돌아온 뒤 6월에 명나라 사신을 맞아 창덕궁에서 잔치하기로 한 날을 기하여 거사키로 모의하였으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오게 되었다.
창덕궁 광연전이 좁고 더워서 세자는 같이 들어오지 않기로 했으며, 계획 된 운검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운검을 맡았던 성승(성삼문의 아버지)과 유응부가 칼을 차고 들어가니 못들어가게 하여 일이 빗나가게 되자 같이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이 변을 고해서 모두가 연루케 되었다.
세조는 박팽년의 재주를 사모하여 조용히 사람을 시켜서 "네가 내게 항복하고 같이 역모를 안했다고 숨기면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으나 박팽년은 웃고 대답하지 않았으나 세조를 일컬을 때 반드시 '나으리' 라고 내려불렀다. 세조가 크게 노하여 무사로 하여금 그 입을 짓찧으며 말하기를 "네가 이미 나에게 신(臣)이라 일컬었고 내게서 녹을 먹었으니, 지금 비록 신(臣)이라 일컫지 아니해도 소용없다."고 하자 과연 신(臣)자는 하나도 없었으며, 모두 거(巨)자로 쓰고 있었다.

박팽년 사우박팽년은 "내가 상왕의 신하로 충청감사가 되었고 장계에도 나으리에게도 한번도 신이라 일컫지 아니하였으며, 녹도 먹지 않았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세조가 실제로 장계목을 살펴보니 과연 신(臣)자는 하나도 없었으며, 모두 거(巨)자로 쓰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고 있었고, 또한 녹도 먹지 아니하고 창고에 봉하여 두었음을 알았다.
세조가 사육신들에게 형을 가할 때 김질을 시켜서 술을 가지고 옥중에 가서 옛날 태종이 정몽주에게 부르던 노래를 읊어 시험하니 성삼문은 정포은의 노래로 답하였으며 박팽년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숙종 때 시호를 충정(忠正)이라 내리고 영조 34년(1758년)에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사육신 중 박팽년만 후손을 남길 수가 있었는데 이는 둘째 아들 순(珣)의 아내 이씨가 임신 중에 있었는데, 조정에서 혹 아들을 나으면 죽이라는 명이 내려졌었다. 때마침 종이었던 박씨도 임신 중이었는데 종은 딸을 낳고, 주인은 아들을 낳게 되어 종의 재치로 서로 바꾸어 자식을 삼아 연명할 수 있었다 한다.

 

 

 

박팽년 사우는 용원에서 조금 들어가 신니중학교 옆 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원은 서울에서 충주로 들어가는 경우 구 3번국도를 이용 신덕저수지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마을입니다.
삼거리신호등이 마을 중심부에 있으며 신호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서 앞에 나오는 다리를 건너지 말고 우회전을 하여야 합니다.
신니 중학교까지 들어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마을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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