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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96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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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리 석불입상

미륵리 석불입상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는 높이 9.8m의 거대한 미륵입상이 있는데 건립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언제 건립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삼국유사에 미륵대원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저자인 일연 스님이 살았던 시대 이전에 만든 것은 확실하니,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륵불상이 직립하여 있는 둘레 3면이 석굴로 되어 있고 석축내에는 강실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이 국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석굴사원이 아니냐 하는 많은 논란이 있다.
1963년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을 복원할 때도 미륵당의 전실 평면을 참고 하기도 하였다.
미륵당의 미륵불상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태자인 마의태자 남매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에 입산도중 이곳에 들러 사찰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현재로 보아서는 고려 시대의 사원으로 보고 있다.
대개가 석굴 안에는 좌상을 안치하는 것이 통례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이 미륵당 석굴에는 높이가 9.8m의 석불입상을 세우고 불상전면을 제외한 3면에 높이 6m의 석축을 쌓아 놓았는데 특이한 것은 이 석축은 불에 심하게 타서 돌이 탄 흔적이 역력하여 석축에 조각된 불상의 모습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화상과 손상이 되었는데 본존불상인 미륵입상 두상부분은 전혀 불에 탄 흔적이 없이 매끄러운 형태로 남아 있어 많은 의문점이 되고 있다.

심한 화재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깨끗한 얼굴쳐 박혀 있는 파불 두상부위!  이 또한  깨끗하니 신비롭다. 일부에서는 화재로 손상된 얼굴을 파불
처리하고 새로 조성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석불우측 3백m지점에 파불이 거꾸로 쳐 박혀 있는데 이 또한 깨끗하다는 점에서 더 더욱 신비롭다.
신라 56대 경순왕 말년 마의 태자 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금강산으로 피신하는 도중에  미륵사와 더불어 세웠다고 하는 전설은 있으나 고려시대 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조성된 일련의 거불들과 양식적인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모두 5매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1매의 얇은 돌로 갓을 삼았으며 높이가 10.5M의 거대한 불상이다.

육계와 나발이 있고 얼굴은 둥글고 평판적이며 둥근 눈섭과 직선으로 감은 듯한 눈을 표현한 것이나 적은 입을 두텁게 표현한 것으로 보아 몸체에 비해 얼굴 부분을 무척 정성을 들인 것 같다.

몸체의 표현은 목은 굵고 3도는 간신히 표현되었으며 어깨에서 발끝까지 같은 넓이로서 마치 판석을 이룬 듯 만들었고 팔은 형체만을 겨우 나타냈고 오른 손은 가슴에서 펴고 있는 시무외인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왼손은 약함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여 이 불상을 약사 여래 입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평평한 안면이나 어깨부터 일직선과 다름없이 표현한 불신이나 하체에서 보이는 약체성등을 보아서나, 8각석등 중대석 과 5층석탑에서 보이는 시대성을 종합할 때 고려초기인 10세기에 창건되었으리라 추정한다.
하늘재,(계립령,한훤령으로 추정되는 경상도 충청도를 잇는 옛 고개  한편으로는 신라가 경상도에서 충청도를 넘는 죽령 바로 밑에 보국사를 창사하고 장육불을 세웠던 것과 같이 한훤령을 넘어 미륵당을 세우고 거대한 미륵불상을 조성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만큼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군사적 교통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커다란 사찰의 이름을 왜 미륵당이라 했는지 그것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절의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암자와도 같은 이름의 미륵당이란 명칭만 남아 있는 것 하며, 신라말 고려초 이와 같은 거대한 석불입상임에도 불구하고 나말여초의 중앙 세력들이 대개 믿던 관음상이나 아미타상이 아닌 미륵불이라는 점이다.

 미륵신앙은 원래 불교적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적 토착신앙의 요소가 강하다.
주 신앙 층들은 귀족 중앙세력이 아닌 가난한 민중들이 였으며, 대개 석가상, 관음상, 아미타상이 아닌 미륵불을 숭배하였으며, 규모 역시 바위 귀퉁이에 엉성하게 조각해 놓은 것이 고작이나 미륵리 석불입상처럼 웅대한 미륵불은 희귀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석불입상은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덕주사 마애불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마의 태자의 전설이 스며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모습 때문이 아닌가 한다.
  
 **** 미륵사지

덕주사 마애불을 응시하고 있는 석불입상월악산국립공원 내 하늘재 아래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사찰지로 현재
파손된 사원 안에 석불입상이 서 있고,그 앞으로
역시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지는 8각 석등이 있고 석등의 전면에는 미륵리 5층석탑으로 알려진 석탑이 1기가 존재하는 단탑가람(사원)배치의 형식을 갖춘 사지이다.
일찍부터 석굴사원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발굴과정을 통해 많은 유구와 유적이 발견되어 이 미륵당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석굴사원일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석굴사원은 인도나 중국과 같이 더운 기온을 피하기 위하여 석굴에 사원을 만들지만 우리나라에는 석굴사원과 같은 양식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한다. 다만 경주의 토함산 석굴암만이 유일무이
하다고 했는데 미륵당 역시 석굴사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경주 석굴암 복원 과정에서 참고로 이 미륵리 주실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석굴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서는 고려 초기에 창건
되었으며 고려후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사지의 이름은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고증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 태자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왕권회복을 도모코자 강원도 한계산성으로 가는 도중 미륵사와 더불어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경주를 떠난 마의 태자일행은 망국의 한을 안고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코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게 되었다.일행은 그곳 계곡 깊은 곳에 야영을 하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그 날밤 왕자는 관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관음보살은 왕자에게 말하기를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우고 그 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니 포덕함을
       잊지말라].

잠에서 깨어난 마의 태자는 꿈이 신기하기에 누이동생인 덕주공주를 불러 꿈의 얘기를 전하고 그 내용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같은 시각에 공주 역시 그와 같은 현몽을 받았다. 두 남매는 맑은 계곡물에 손과 입을 씻고 서천을 향해 합장배례한 뒤 다음날 서쪽을 향해 고개를 넘으니 고개마루턱 큰 바위에 한 권의 황금빛 포경문(布經文)이 놓여 있었다.그 곳에서 일행은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파란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이 보이는 장소를 택해 석불입상을 세우고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였다. 그리고는 8년이라는 세월을 이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공주는 만족하였으나 마의태자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태자는 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지(初志)를 굽히지 않고 한계산성을 향해 떠났고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진
공주는 절에 몸 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을 그리워하며 태자의 건승을 빌었다 한다.

그러하기에 미륵리 석불입상은 마의 태자의 상이요 덕주사 마애불은 덕주 공주의 상으로 두 남매가 마주보기 위해 마애불은 남향이고, 석불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하며 이들은 일년에 한 번씩 서기를 하여 서로 만난다고 한다.
실례로 북향하고 있는 불상을 찾아보기란 힘들며 또 한편으로는 석불을 비롯하여 석축 전체가 화재에 큰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륵입상 두상부분은 전혀 불에 탄 흔적이 없이 매끄러운 형태로 남아 있는 점도 이 전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충주, 문경을 잇는 3번국도를 이용 수안보까지 갑니다.
수안보에서 문경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월악산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진입로가 나옵니다..
이 진입로는 597번 지방도로서 월악산국립공원 미륵리와 송계리를 거쳐 36번 충주 단양을 잇는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지릅재를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섭니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좌측으로는 송계리로 향하는 597번 도로입니다. 직진하면 특산물판매장과 더불어 미륵사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특산물 판매장 앞에 조성된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도보로 미륵사지까지 내려갑니다.
주차장에서 미륵사지까지는 걸어서 약10분 소요됩니다.특산물판매장은 매우 짧은 거리에 조성된 먹거리 판매점입니다.토속음식 및 산나물 등등을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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