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충훈사 (이수일 장군)

 

 

이수일 장군 묘 - 충북기념물 21 호

▶▶사진을 클릭하시면 확대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주변 여행지 **

+김생사지
+
봉황리 자연휴양림
+
앙성온천
+
중원고구려비
+
조정지댐,탄금호
+
탄금대
+
중앙탑

이수일 장군 ,충훈사충주시 금가면 석교리, 현재 오석리에는 충무공 이수일 장군의 신위를 배향한 충훈사와 장군의 묘소, 묘소 아래는 현종 8년에 세워진 높이 4.17m 폭97cm 두께 25cm나 되는 거대한 장군의 신도비가 서 있습니다.


**** 충훈사

1979년 중건 된 사당으로 충무공(忠武公) 이수일 장군의 신위를 모신곳입니다.
사괴석 원단으로 일랑을 두르고 있는 경내를 솟을 삼 문을 통해 들어 서면 정면에 충훈사 현판이 붙어 있는 사당이 있고 그 좌측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 처마  맞배 지붕을 이루고 있는 제실(齊室)이 있습니다. 남향으로 배치된 사당의 규모는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구획하여 전면에 반 칸의 전퇴(前退)를 만들고 각 칸에 사분합(四分閤) 띠살문을 달았으며 내부는 우물 마루를 깔고 위패를 배향(配享) 하였습니다.


**** 이수일 장군

이수일장군 영정충주 이수일 장군 묘 장군석이수일 장군은 명종 9년에 옛날 지명으로 충주 서촌의 시곡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의 지명으로는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가 되겠습니다. 
자는 계순이며, 호는 은암이고 본관은 경주이며, 선조 1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처음에는 훈련원에 예속 되고, 선조23년에 선전관이 되었다가 이듬해 선조24년에 장기현감이 되었습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수일은 동지를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적을 맞이하여 크게 싸워 거꾸러 뜨린 적병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합니다.

선조 26년에는 밀양부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에도 안동,예천,용궁에서 적병을 막아 내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 후 경상수사로 승진하게 되고,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용맹스럽게 앞장서 나가 싸우니, 장군 휘하, 해변에 있는 병사들이 덕분에 무사했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조는 이 공으로 가선대부를 제수하고 친히 글을 하사하며 포상하기를 "처음으로 보는 순국의 선비여! 두터운 녹을 받은 지난날의 미덥던 사람에 못지 않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경상우병사에 이르게 되었으며, 선조 38년에는 선무공신의 호를 받았습니다.

광해군 때에도 장군은 세 차례나 북병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에도 번호가 난을 일으키자 이수일 장군은 중군을 맡아 세 갈래로 진격하여 그들의 소굴을 모두 불살르고 격퇴하여,어유간으로부터 풍산보에 이르기까지 3백리 지역에 적이 나타나지 않는 평온을 되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장군은 가담하여 공을 세워 공조판서에 임명되었습니다.
인조 2년(1624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수일은 4도 부원수 평안판사가 되어 안현에 진을 치고 이괄의 무리를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습니다.

인조 10년(1632) 79세의 나이로 가택에서 운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좌의정에 증직되고 뒤에 충무(忠武)라 시호를 받습니다.

이수일 장군은 어질고 화순하여 병졸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등 사병들이 모두 그를 잘 따랐다고 합니다.
전장에서는 항상 적을 잘 살피고 기회를 보아 승산이 있음을 확인한 뒤에 싸우니 백번 싸워도 패배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믿음과 절개를 지키고 40여년 청렴과 인내,검약을 지키며, 겸양과 공손을 스스로 다스리니 사람들이 모두 장군을 존경하였습니다.

효종 때의 북벌계획에 있어 큰 역할을 담당했던 유명한 훈련대장 이 완은 이수일 장군의 아들입니다. 한 집안이 대를 이어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셨습니다.

 


신도비**** 신도비(神道碑)

장군의 신도비는 충훈사 입구 길 옆에 서 있습니다.
대석(臺石)은 귀부(龜趺)로 되어 있고 길이는 320cm 폭 210cm 높이는 100cm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석입니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웠는데 폭은 97cm,두께 26cm, 높이243cm의 대리석 앞 뒤 양면에 음각하였으며 양면 모두 25행 90자를 음각하여 총 4100여자에 달하는 충주 중원지역 최장문(最長文)의 비문입니다.
비문은 이경여가 찬문(撰文)하고 김좌명이 서(書)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수일 장군 묘

이수일 장군 묘충무공 이수일 장군묘는 부인 전주이씨와 합장묘이며 원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봉분의 높이는 약220cm에 달하고 하단에는 8개의 호석을 둘러서 봉분의 무너짐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묘의 전면에는 묘비와 혼유석,상석,향료석,동자석,장군석,망주석등...각종 석조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자석은 두 손으로 홀을 감싸 쥐고 있으며 얼굴은 둥글고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양 귀는 어깨에 닿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솟아 있습니다.
장군석은 장명등의 좌우로 454cm지점에 배치하였고 화강암의 석재로 만들고 높이는 210cm이며 어깨폭은 60cm정도입니다. 두 손으로 큰 칼을 감싸쥐고 있는 모습에 갑옷의 무늬를 입혀놓았으며 얼굴은 풍만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양 귀는 크며 투구를 높다랗게 쓰고 있습니다.
묘비는 김집이 찬(撰)하고 송주길이 서(書)하였습니다.
 

 

 

 

충훈사는 금가면 강변도로인 김생로를 따라 들어가야만 합니다.
지도의 금가면 강변로는 과거 구 목행대교만 있었을 경우 쉽게 강변로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구 목행교는 일방통행로로 금가면에서 충주로 들어오는 차량만 허용됩니다.
따라서 신 목행대교를 넘어 첫번째사거리에서 좌회전해야만 금가면 강변도로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금가면 강변로를 따라 들어가 5분여 정도 후면 김생사지가 있는 반송마을에 도착하게 되며 이 강변로를 따라 계속 들어가면 우측으로 이수일 장군 사당인 충훈사로 들어가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충훈사 안내판이 도로가에 있습니다.

충훈사로 들어가는 길은 협소하여 차량 한 대 지나 갈 정도입니다.
이 금가면 강변도로는 충주CC, 조정지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정지댐을 건너 충주고구려비, 중앙탑사적공원, 탄금대를 거쳐 충주시내로 들어 올수 있으며
충주고구려비에서 520번지방도를 이용 중부 내륙고속도로 북충주IC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Copyrightⓒ TEXHAN CO. All right reserved
충북 충주시 교현동 411-5번지
TEL 043 -854-7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