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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 & 6.25전승비

 

1950년 7월7일 ..6.25전쟁 최초 승전보 "동락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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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
신니면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비로써 1950.6.25.전란때 동락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한 김재옥 여교사의 공적비이다. 1968년 시멘트로 높이 6m의 비를 만들었다가 1978.11.12. 석조물로 바꾸는 공사에 착수하여 1979.1.14.완공되었다. 현 동락초등학교에는 김재옥여교사 기념관을 비롯하여 6.25 참전 기념비가 더불어 서 있다.
 김재옥 여교사는 1960년대에 영화로도 잘 알려진 "전쟁과 여교사"의 직접 주인공이다



**** 6.25 전승비

신니면 대화리 국도변에 있는 비로서 1950년 6.25전란 당시 적과의 싸움에서 동년 7월7일 충주시 신니면 동락전투에서 우리측 군인이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1978년에 세운 비석으로, 동락초등학교의 남쪽 도로 옆 산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전투로 승리를 거둔 날이 7월 7일 이므로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하고 해마다 기념식을 갖는다.
 "전승비"와 "동락전투"로 불리는 이곳 싸움의 내용을 적은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
*** 김재옥 여교사와  6.25전쟁 최초 승전보 "동락 전투"...

  김재옥 여교사는 193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감격의 해방이 되던 다음해에 상평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성여자중학교에 입학하여 1949년에 졸업하였다.
다음해 충주사범학교를 수료하고 6.25의 비극이 있던 해인 1950년 6월1일에 동락 초등학교에 교사 발령을 받고 근무하였다.
  이 해 6월25일 불법 남침한 북한 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였고,춘천을 방어하다가 후퇴하여 충주에 주둔중이던 국군 6사단장(대령 김 종오)은 7월3일 밤 북괴군이 장호원까지 침입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제7 연대장(중령 임 부택)에게 장호원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락초등학교김재옥 여교사 기념관장호원 탈환 명령을 받은 7연대는 7월4일부터
장호원에서 음성에 이르는 무극리,감우재,부용산,동락리 일대에서 북괴군 제15사단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중 7월6일 밤 제7연대 제3대대장(소령 이남호)은 정찰활동을 통해 장호원에 진출한 북괴군 제48연대의 주력부대가 음성을 점령하기 위해 생극,주덕방면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것을 확인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을 즈음 7월7일 05:00경 동락리를 통과한 적의 차량대열이 우리군이 잠복해 있던 가엽산 310고지에 다다르자 06:00을 기해 기습공격을 전개하여, 그 동안의 승세에 도취되어 별다른 경계도 하지 않은 채 이동하고 있던 적을 크게 격멸시켰다.

한편,3대대가 신덕저수지 주변에서 북괴군을 섬멸하고 있던 7월7일 05:00경 전날 부용산 정상에 진출하여 경계를 살피고 있던 제2대대장(소령 김종수)은 산 아래에서 총성과 포성이 들려오자 제3대대가 교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그쪽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동락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마을 앞 도로에 적의 연대 병력이 집결하고 교정에는 수십대의 차량과 포가 포진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한편, 김재옥 여교사는 피난도 가지 않고 학교를 지키고 있다가 적의 병력이 학교로 집결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적군을 안심시키고 학교에서 4km가 넘는 험준한 가엽산 에 매복 중이던 아군에게 적15사단 예하 48연대와 포병연대의 배치상황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북괴군은 이 때 김재옥 여교사로부터 무극리 일대는 국군이 철수하고 없다는 정보를 믿고 경계를 소홀히 하였다. 이에 아군은 적을 격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 06:00경 기습공격을 전개하니 북괴군은 마찬가지로 혼비백산하여 저항을 포기한 채 사방으로 뿔뿔히 도주하였으나 대부분이 사살 또는 생포되었다. 이날 우리 군이 올린 전과는 적 사살 2,186여명, 생포 132명, 곡사포 122mm 6문, 76mm포 4문, 직사포 7문, 반전차포 5문, 82mm박격포 14문, 61mm박격포18문, 구경50 기관총 6정, 중기관총 12정, 경기관총 14정, 자동소총 37정, 소총 919정, 장갑차 4대, 2.5톤 트럭60대,1/4톤 짚차 15대,사이드카 4대, 무전기 4대,전화기 12대, 마필24두 등 수많은 장비를 노획한데 반해 우리아군의 손실은 전사 9명,부상53명, 뿐 이었다.
아군은 불과 400여명의 적은 연대 병력이었다.


이날 동락리 기습전은 7월7일 새벽부터 한낮까지 북괴군 제15사단 제48연대를 동락 - 신덕저수지-용원리 와 연결되는 약 4km구간에서 국군 제7연대 제3대대 제9중대가 선두를 공격하여 진출선을 차단한 것을 시발로 전반부는 제3대대가 후반부는 제2대대가 거의 동시에 공격하여 연대규모 이상의 적을 격파하고 많은 장비를 노획한 값진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6.25참전비이날 올린 "적 1개 연대 섬멸" 이라는 승전소식은 연전연패하여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군장병들에게 큰 용기와 사기를 북 돋아주는 쾌거가 되었으며 노획한 장비는 충남 대전에서 일반에게
전시하여 국민들에게 우리국군이 지고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일부 소련제 무기는 소련이 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로 UN에 보내졌으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제7연대 전 장병에게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최초의 1계급 특진의 영예가 주어졌다.
이곳 동락전투의 값진 승리는 6.25전쟁 최초의 승전지로 한국 전투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김재옥 교사는 그후 당시의 소대장 이득주 소위와 결혼하여 군인 가족으로 생활하였다.
남편을 따라 강원도 인제지방에 있을 때 어론국민학교 설립에 적극적인 힘을 기울였고 군인교회를 건립하여 군인 및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의 정신을 심어 주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1963년 12월 고재봉 사건 때 저격 대상으로 오인 받아 김 여사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였다.
그 후 국방부에서는 김여사의 빛나는 반공정신을 널리 알려 그를 찬양하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전국에 상영하였다.
동락 전투 당시 박격포 대장이었던 신용관 중위가 군을 제대하여 1968년 해양 경찰대장으로 재임시 고인이 된 김 교사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현충비를 건립하였다.
또한 1976년 7월에 충주 여교사 협의회에서 김 여사의 업적을 기록한 행적비(6.25참전기념비)를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세웠다.

 

 

 

 

 

서울,장호원에서 구 3번국도를 타고 충주로 내려오다 보면 큰 저수지를 만나게 되는데 신덕 저수지라고 합니다.
이 저수지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조그마한 초등학교 교정이 길가에 있습니다. 동락초등학교이며 이 학교 안에 김재옥 여교사 기념비 및 기념관이 있습니다.
안내판이 있기는 하나 눈에 잘 띄지는 않습니다.동락전투전승비는 동락초등하교 맞은편 길 건너 신 3번국도 아래에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5분거리도 안됩니다.
동락초등학교에서 충주시가지까지는 약 30여분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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