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주산성 - 송계계곡  월악산국립공원

 

 

충북 기념물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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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주 산성
월악산 국립공원 내 미륵리 미륵사지에서 송계계곡을 따라 송계리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송계팔경 중 하나인 망폭대에 다다르게 되며 그 옆으로 덕주산성 남문이 길을 가로막듯  서 있습니다.
덕주산성문은 이곳 외에도 동문과 북문이 있으며 동문은 덕주사지 입구인 덕주골에 있고, 북문은 송계리 마을 도로 옆으로 있습니다.

세 개의 성문은 경북 문경에서 하늘재를 넘어 오는 남쪽 미륵리 길과 남한강 한수나루에서 월악산 서쪽 기슭으로 들어오는 북쪽 송계리 길을 차단하는 구실을 합니다.
세 성문을 연결하면 덕주산성은 꽤나 넗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 때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의 독자적인 산성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나 현존하는 성문은 조선시대에 새로이 축성된 것입니다.
산성의 성벽은 축조 연대가 각기 달라 덕주산성이 꽤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뒷받침 해줍니다.덕주산성의 남문은 성벽을 내외벽으로 쌓고 그 위에 통로를 만드는 식으로 되었는데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성축은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원형을 잘살려 복원 시켜 놓았습니다.

덕주산성 남문덕주산성 동문덕주산성 남문
덕주산성남문               덕주산성 동문                덕주산성 북문

남문을 조금 내려가 송계팔경 중 자연대에 이르러 동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덕주사로 연결됩니다.
덕주사로 올라 가다보면 송계팔경 중 학소대가 나오며 동시에 덕주산성 동문이 나타납니다.

성문은 북쪽의 절벽에 닿아 있고 계곡을 끼고 성벽이 건너편 산까지 치달아 올라가 있습니다.

 덕주산성 북문과 남문이 뚫리면 여기까지 밀리게 되고 동문 안쪽, 즉  계곡 상류쪽으로 들어가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덕주산성 동문을  지나면 곧  덕주사가 나옵니다.

 덕주사에서 월악산 등산로를 따라  마애불(보물 96호)쪽으로 한 30여분 올라가면 덕주산성 내성이 나옵니다. 내성은 동문의 방어벽이 뚫려 덕주사까지 적이 밀려올 경우를 대비 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덕주산성의 방어체제에 있어서 내성은 아마도 최후의 보루인 듯 싶습니다.
1차로 덕주산성 북문과 남문을 방어하고 2차로 동문을 방어하고 마지막으로 내성에서 최후의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주변산세를 적절히 잘 이용한 산성 구조입니다.

덕주산성 동문덕주사 마애불(보물406호)

덕주산성 남문덕주산성 남문

덕주산성 동문 성벽덕주산성 동문 성벽덕주사

덕주산성 내성

 

 

 

덕주산성 북문은 송계리 마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역시 찾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으며,북문 상단 중앙석벽에 태극문이 선각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덕주산성은 북으로는 남한강을 끼고 있고  남으로는 하늘재를 통해 남과 북을 연결 시켜주는
주요한 교통요충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이로인해 통일 신라 말에는 중앙 집권세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 분권적인 강력한 호족 세력이 이 지역에 나름대로 웅거하였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여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천혜의 지형 덕분으로 예로부터 유명한 피난처로도 알려져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덕주산성은 신라 경순왕 제 1왕녀인 덕주공주가 마의태자와 함께 피란 온 곳입니다.

또한,고려 고종 때에 몽고의 침략으로 충주 사람들이 피난을 와 은신한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상주에서 돌아오는 몽고군을 하늘재 밑에서 쳐부시어 적 사상 1000여명을 낸 승전지이고 합니다.

그 때 당시에 몽고가 대군을 몰고 충주성을 함락코자 하여 많은 충주사람들이 이 곳으로 피난 오게 되었는데 김윤후장군과 용감한 충주민이 버티고 있는 충주산성 공략에 실패한 몽고군은 달아난 충주민들이 있는 이 곳 월악산성(덕주산성)을 공격코자 하였으나 월악산 주변으로 갑작스럽게 안개가 자옥히 끼더니 요란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쳐 공포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필히 월악산신이 노한 것으로 생각한 몽고군은 겁을 먹고 산성을 피해 문경을 넘어 상주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합니다.
고려 고종은 이 모든 것이 월악 산신이 덕주산성을 지켜 주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신라 때부터 내려 오던  "월악신사"를 지어 놓고 국가의 안령을 비는 호국적 기도처로 삼았습니다.

덕주산성 남문월악산 영봉 정상에서 바라 본 송계리 일대 덕주산성

덕주산성 남문덕주산성 북문덕주산성 동문( 복원 전 옛 모습)


임진왜란 때에도 충주와 주변 주민들은 떼를 지어 월악산성으로 난을 피해 몰려 들어 왔었다합니다.
왜군들 역시 월악산성만은 건들지 못해 그 곳에 숨어있던 피난민들은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 말 고종 때 민비가 대원군과 정치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피신처로 삼아 성을 일부 축성하였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월악산국립공원 미륵리 혹은 송계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미륵리로 들어가는 길은 3번국도 상의 수안보에서 갈라지며 송계리로 들어가는 길은 단양으로 향하는 36번 국도에서 갈라집니다.

수안보에서 미륵리를 거쳐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면 산성 남문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망폭대 옆으로 덕주산성 남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36번 국도에서 월악산국립공원으로 들어오면 덕주산성 북문이 송계리
마을 한 귀퉁이에 농가들과 함께 서 있습니다.

동문은 덕주골 휴게소에서 하차하여 덕주사로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시외버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 수안보를 거쳐 송계계곡 덕주사 입구까지 오는 노선입니다. 

    

 

<<시내버스>>
충주 혹은 수안보까지 와 월악산 송계계곡행 시내버스를 이용합니다.
** 시내버스 시간표** ( ☎ 043-844-4112,  845-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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