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산성(남산성) -충주

 

 

충북기념물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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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 임경업장군

충주시 직동 해발 636m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이 산성은 일명 남산성, 금봉산성으로 충주 동쪽의 계명산 영액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탄금대 토성지와 함께 충주를 방어하기 위한 산성으로,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성입니다.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강의 합류지점인 분지로써 토지가 비옥하고 기온과 물의 사정이 좋아서 선사 시대부터 취락이 이루어 졌던 곳입니다.
충주의 지형은 남쪽으로는 한반도를 가로 지르는 백두대간이 가로막아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해 주며,
북서쪽으로 남한강과 달천강이 합수가 되어 자연스럽게 수운이 발달되어 일찍부터 영남에서 서울,경기로 통하는 수운의 출발지이자 요충지였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거점지역으로 매우 중요시 되던 지역이 바로 이 곳 충주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조령"을 잘 막으면 서울이 편안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충주는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육로와 수로가 통과되는 요충지이며 남과 북을 있는 중요한 곳이다 보니,삼국시대에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신라가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충주 지역을 반드시 차지하여야만 했습니다.

남산성- 멀리 계명산이 보입니다.남산성남산성

남산성남산성남산성 동쪽 성벽을 오르며..

삼국중, 충주지역은 최초 백제의 영역이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주변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긴 백제는 한 때 충주를 도읍지로 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기록에 따르면 백제 개로왕 21년(475년)에 도읍지 후보로 충주가 증장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흔적이 충주시 안림동 계명산 아래 어림 마을에 궁궐지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충주산성 역시 최초로, 백제 구이신왕 시대(420--426년)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후세에 몇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이 성이 충주산성이란 명칭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에 몽고족이 침입한 때부터입니다.  고려 고종 40년(1253년) 9월에 몽고의 4차 침입 때에 이 산성에서 혁혁한 승리를 이루었었습니다.

현재 고려 항쟁 충주산성에 대한 의견이 대림산성(대림산 소재)이라는 설이 부각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통용되는 설은 이 산성으로 알려 지고 있습니다.

충주산성은 주위가 1.2km, 성벽의 높이 5.8m로 경사가 급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았으며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약 300m정도이며, 일부는  최근에 복원개축된 곳도 있습니다.

남산임도에서 바라 본 남산성 동쪽성벽..남산성 동쪽성벽..남산성 동쪽성벽..

남산성 동쪽에 조성된 우물남산성 북쪽 성벽남산 정상에서 바라 본 월악산 영봉

충주 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이 막히는 곳 없이 인근 일대가  훤히 들어나  보입니다.
지형이 완만한 북동쪽에는 옛 우물로 보이는 원형의 구덩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서문이 있던 자리로 보이는 곳에서는 신라와 백제 계통의 토기 조각들이 여러 점 눈에 띄며,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토기조각,기와조각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성과 관련된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 마고 선녀가 7일만에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충주산성은 "마고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충주산성에 내려오는 전설

마고할미가 쌓은 성이라 하여..

남산성 북쪽 성벽
 충주 남산성을  마고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금단산 수정봉에 은거하고 있던 마고할미(늙은 신선할미)는 천율을 어기고 마구 살생을 하였으므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하천산 노둑봉으로 쫓겨나서 험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00여년이 지난 후 마고할미는 천제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면서 금단산으로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곡하게 탄원을 했다.
이에 천제도 그의 개과천선을 인정하고 충주 금봉산에 들어가 성채를 쌓고 처소로 삼도록 명하되 성은 반드시 북두칠성을 따라 한 별씩 7일 동안에 쌓도록 하라고 하였다. 마고할미가 명을 받고 금봉산에 이르러 보니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좋아서 속으로 몹시 흡족하게 생각하고 그 날부터 성을 쌓기 시작해서 꼭 7일만에 완성했다.
천제가 축성을 끝냈다는 말을 듣고 도감을 보내어 성을 살펴 보도록 하였는데 수구가 서쪽을 향하여 뚫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받은 천제는 크게 노하여 마고할미를 꾸짖어 처서성주로 삼지 않고 성직이로 삼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천제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 서쪽하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고가 금봉산으로 내쫓긴 보복으로 천제에게 욕을 하는 뜻으로 수구를 서쪽으로 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마고할미는 그런 뜻이 아니라 지형을 이용해서 편리한대로 한 것뿐이었다.
자고로 축성의 법칙을 보면 큰 문은 남향으로 내고 암문은 동향으로 수구문은 동남으로 설치해야하며 서문은 다락을 세워 위엄과 화려함을 표해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천제숭배사상에서 기인된 것이다.
마고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고의가 아니었음을 진정했으나 천제는 끝내 노여움을 풀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고할미는 이 곳 성직이 노릇을 하다가 천명을 다하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이 성의 이름을 마고성이라 부르게 되었고 또 남산이 있으므로 남산성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는데 성중에서 유일하게 서향 수구문을 가진 성이라고 한다.
출처: (내고장 전통가꾸기)

 

 

 

 

 

*마즈막재 들머리
충주시가지를 벗어 나와야 합니다
충주시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기 때문에 충주시 동편에 위치한 마즈막재까지는 퍽 짧은 시간에 시가지를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건물들이 시야에 사라지면서 앞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보이고 좌우로 아파트 단지(LG아파트)가 나오는 사거리에 당도하게 됩니다.
우측으로 가면 용산주공APT 들머리로 가는 길이기도합니다.
직진하면 마즈막재입니다.좌우로 사과나무 밭인 과수원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장같은 음식점들을 지나면 고개 끝인 마즈막재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즈막재 아래에는 비교적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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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주공APT 들머리(용산동)

위에 언급된 LG아파트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갑니다.
주유소를 지나고 200여M 좌측 언덕위로  소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산행 들머리인 주차장에 당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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