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사지 법경대사 자등탑비 충주

 

 

보물 17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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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여행지 **

+옥녀봉(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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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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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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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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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충주호리조트에서 동쪽 호반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조그만 마을이 나옵니다.
옥녀봉(부산)의 등산로 초입이기도 한 마을 앞에는  법경대사 자등탑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이며, 이 일대에 통일신라말에 창건된 정토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합니다.

정토사지에서 등재된 문화재로는 법경대사 자등탑비(보물17호)외에도 1918년 일제에 의해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졌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홍법국사 살상탑(국보 102호)과 홍법국사 탑비(보물359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등탑비와 관련된 법경대사자등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하는데 그 정확한 소재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현 자등탑비가 있는 곳은 원래 정토사지가 아닙니다.
정토사지의 원래 위치는 보다 아래 쪽 즉, 충주호에 수몰되어 있습니다.
현 위치의 법경대사 자등탑비는  충주댐 건설로 인해  위쪽  가까운 언덕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보물 17호 법경대사 자등탑비보물 17호 법경대사 자등탑비 옆모습보물 17호 법경대사 자등탑비 뒷모습세련된 해서체로 전면에 40행 3240자가 새겨져 있다.비의 글은 최언위라는 사람이 짓고, 구족달이란 사람이 썼다.

정토사지에는 고려초부터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정토사(淨土寺),개천사(開天寺)등의 명문 기와와 해무리 굽의 고려 청자 편들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창건 초기에는 정토사라 하였다가 고려 중기 개천사라 고쳐 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이 정토산에 있다고 하며 고려의 역대 실록이 이곳으로 옮겨졌다가 죽주 칠장사로 옮겨 지고 공양왕 2년에 다시 이 곳으로 운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폐사의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영정조 시대의 [충청도 읍지] 충주목조의 내용으로 보아 조선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홍법국사 살상탑(국보 102호) 모형법경대사자등탑비 세부사진

이 지역은 한 때 토정 이지함 선생이 대길삼지 (大吉三地)라 하여 인심좋고 살기 좋은 피난지로 세 곳을 정하였다고 하는데 각각 만지, 독지,무등이라 하여 지금도 마을 이름으로 내려 오고 있습니다.


법경대사는 신라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유명했던 승려로써 법명은 현휘이고, 속세의 성은 이(李)씨이며 정토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법경대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에 출생하여 영각산이란 절의 심광대사에게 서 가르침을 받고 
승려가 된 뒤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고려 태조7년(924)에 귀국하여 국사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국사란 학식과 덕망이 높아 국가의 모범이 되는 승려에게 주던 최고의 승직으로 국왕의 스승인 왕사보다 높은 지위입니다.)
후에 정토사의 주지가 되어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불교의 뜻을 가르치는데 힘쓰다가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의 나이로, 승려가 된지 41년만에 입적하였습니다.

시호를 법경 그리고 탑명을 자등이라 내려 받았습니다.

자등탑비의 글은 태자의 스승으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최언위가 지었고,  글씨는  중국의 구양순체를 익힌 당대의 명필 구족달이 썼습니다. 이 비석은 다른 비석과는 달리 4명의 승려들이 조각하였다고 합니다.


비석은 화강암 재질로, 높이 3.15m,  폭 1.45m입니다.

웅장한 기상이 넘치는 훌륭한 탑비로 통일신라말 고려초의 양식을 잘 보여즈고 있습니다.

귀부는 머리가 용머리로 입을 벌린채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구갑에는 화려하게 화형과 만자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비신에는 해서체로 전면에 40행 3240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참고문헌 : 내고장 전통가꾸기>


<법경대사자등탑비가 있는 532번 지방도로에서..>

 


 <법경대사자등탑비 주차장과 멀리 충주호리조트...>


 

 

 

충주에서 목행대교를 지나 원주로 향하는 19번도로를 타고 충주시가지를 빠져나옵니다.
이 19번 도로는 38번국도와 만나 장호원과 제천으로 갈라지기도합니다.
목행대교를 넘자마자 두번째사거리에서 우회전합니다.
2차선 구19번도로이면서 대미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입니다. 대미마을에 들어서기 전 우측으로 군부대 가 있으면서 진입로가 보입니다.우회전하시고 군 부대앞 길에서 또 우회전하시면 조동리 마을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측으로 남한강이 흐르는 철교 밑을 지나면 조동리 마을 중 하나인 관암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을 입구에는 충주댐으로 빠지는 직진도로와 마을 진입로가 갈라집니다.법경대사자등탑비는 우선 마을로 들어가 계속 직진하면 충주호가 보이면서 멀리 코타레저타운(충주호리조트)이 보입니다. 법경대사자등탑비는 코타레저타운을 거쳐 조금만 더 들어가면 도착하게 됩니다.
대미에서 진입하는 방법 이외에 충주댐에서 조동리를 거쳐 들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충주댐에서 조동리로 들어가는 길에는 많은 민물횟집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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