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충주누암리고분군 - 52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금면일대 문화유산답사여행(3) - 봄
  

충주 가금면일대 문화유산답사여행 -③충주 누암리고분군(사적 463호)


** 답사코스 :

    충주에서 출발
       : 충주 ~ 탄금대 ~
창동마애불, 창동 5층석탑,약사여래입상 ~ 누암리 고분군 ~
         충주중원탑평리7층석탑(중앙탑),박물관 ~ 장미산성 ~  중원고구려비(국보 205호) ~
        충주고구려천문관  ~ 잣고개 ~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1401호).

 

 

충주 가금면 누암리고분군은 국보 6호 탑평리 7층석탑(중앙탑)이 있는 중앙탑 공원에서 남쪽으로 약 1km떨어진 누암리 소일마을 서쪽 야산기슭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소일마을 입구에서 농로를 따라 들어가는 길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중앙탑공원 옆 두련마을쪽으로 난 진입로를 따라 소일마을로 연결되는 무지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도착하게 됩니다. 
누암리고분군은 사적 46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만큼 의미가 있는 유적이겠지요..
허나 막상 현장에 가서 보면 고분군 자체는 그냥 말 그대로 무덤들일뿐 시각적으로 큰 경이로움 같은 것을 주진 못합니다. 그런 볼품없는 무덤들임에도 불구하고   "지방기념물"도 아닌  "사적(史蹟)"이란 칭호까지 붙여진 것은 누암리고분군이 그 만큼의 가치가 있고 사적으로 지정될 만한  중요한 문화재라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사적(史蹟)"이라 함은 역사적,예술적,학술적으로 가치가 큰 것으로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를 말합니다.
무슨 이유로 인해 이 무덤군이 높은 수준의 문화재로 여겨지는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520번 지방도로에서 갈라지는 누암리 고분군 진입로>


 

고분군이란 말은 무덤이 무리를 짓고 있다는 뜻입니다.
누암리고분군과 같이 밝혀진 무덤군외에도 국보 6호 탑평리 7층석탑을 중심으로 서쪽 능선을 따라
누암리고분군에서부터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율궁산(봉황리 자연휴양림이 있는 곳)과 장미산까지
무덤떼가 계속해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 누암리 고분군-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누암리고분군은 신라및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양식인 석실묘 스타일이라 합니다.
고로 이 무덤들은 신라인과 통일신라인들의 무덤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근 야산에서 고려시대의 무덤스타일인 석관묘와 토광묘등도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두련마을에서 진입로를 따라 누암리고분으로 가려면 고개 하나를 넘게 됩니다.
이는 남쪽 소일마을로  넘어 가는 무지(무덤)고개라 합니다. 고개의 명칭이 누암리고분군과 무관치 않으며  
또, 주민들에 의하면 이 곳을 옛부터 고려장터라고도 불렀다합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고려시대 무덤스타일인 석관묘와 토광묘들이 인근야산에서 발굴되었다는 점과 일치하는 것같습니다.

 

 


<맨 앞에 있는 가장 큰 무덤은 진골출신의 무덤이라 합니다>

  

 

삼국중 고구려혹은 백제의 무덤양식이 아닌 신라무덤양식이 발굴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맥락으로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인 충주지역으로 진출하여 국원소경을 설치한 6세기 중엽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충주지역의 중요성은 크게,

  1. 전국 최대규모급 철생산지,
  2. 남한강상류에 위치한 지리적 군사적 요충성....  정도를 들수 있습니다.

충주지역에서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최적의 장소는 이 곳 탑평리 일대로 옛날 고구려의 국원성과 신라 국원소경,중원경 자리로 추측되는 지역입니다.
왜냐하면 탑평리 서쪽 능선 주변으로 삼국시대 철광산과 제철소가 있던 곳이며 동쪽으로는 바로 남한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태클은 사절입니다. ^^

  

 


<누암리고분군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고분군중 1호분인 가장 큰 무덤은 출토유물과 석실의 규모, 스타일로 보아 신라 진골신분의 무덤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고분군의 무덤들은 일제시기를 거치며 대부분 도굴,파손되었다고 합니다만 1호분에서 신라 고배인 단각고배(短脚高杯)라 불리는 짧은굽다리 접시를 비롯하여  순금귀걸이,신라토기등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단각고배(短脚高杯)!

바로 이 유물이 특종감인데 이유인즉, 단각고배는 6세기 중엽에 나타나는 신라의 대표적 유물이며
진흥왕이(557년) 한강유역인 충주를 차지하고 다음해인 19년(558년) 왕경 6부의 귀족과 호민들을 충주로 이주시켰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증명하는 명확한 물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암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굽다리 접시인 단각고배>

 

  

    
<맨 앞에 있는 가장 큰 무덤은 진골출신의 무덤이며 6세기 신라대표유물인 단각고배가 출토되었답니다>


  


<누암리 고분군은 바깥으로 한 바퀴 돌아 볼수 있습니다.>

 

즉, 이런 결정적 유물로 인해  충주누암리고분군은  고대 신라의 한강유역진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기에 사적 463호로 지정된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출토된 단각고배가 중앙탑 옆에 있는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들려 실물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다음 목적지인 중앙탑으로 알려진 국보 6호 탑평리 7층석탑으로 이동합니다.

 

 

2012-03-09 20:31:18


   

관리자로그인~~ 전체 56개 - 현재 1/2 쪽
56
운영자
2014-01-16
9351
55
운영자
2013-08-14
5749
54
운영자
2013-03-06
7507
53
운영자
2012-07-29
8237
52
운영자
2012-05-07
7405
51
운영자
2012-03-28
5438
50
운영자
2012-03-28
5249
49
운영자
2012-03-28
4920
48
운영자
2012-03-28
3906
47
운영자
2012-03-24
3817
46
운영자
2012-03-19
3256
45
운영자
2012-03-15
3083
44
운영자
2012-03-15
3388
43
운영자
2012-03-15
4088
42
운영자
2012-03-11
3256
운영자
2012-03-09
3104
40
운영자
2012-03-08
2745
39
운영자
2012-03-07
4068
38
운영자
2012-03-05
3366
37
운영자
2012-03-04
3054
36
운영자
2011-12-20
4508
35
운영자
2011-12-15
3777
34
운영자
2011-12-06
3039
33
운영자
2011-11-24
3430
32
운영자
2011-11-17
4696
31
운영자
2011-11-14
4553
30
운영자
2011-11-05
4025
29
운영자
2011-11-05
4548
28
운영자
2011-11-04
3979
27
운영자
2011-10-27
3702
26
운영자
2011-10-22
3843
25
운영자
2011-10-21
4270
24
운영자
2011-10-19
3482
23
운영자
2011-10-19
3570
22
운영자
2007-06-25
8389
21
운영자
2007-06-12
8678
20
운영자
2007-06-08
8889
19
운영자
2007-05-14
7515
18
운영자
2007-04-10
7880
17
운영자
2007-03-18
9134
16
운영자
2007-01-29
10309
15
운영자
2006-10-26
9841
14
운영자
2006-10-20
10908
13
운영자
2006-09-09
7319
12
운영자
2006-06-11
11230
11
운영자
2006-05-13
7466
10
운영자
2006-05-09
7690
9
운영자
2005-11-28
9807
8
운영자
2005-09-29
10939
7
운영자
2005-06-28
10567

[맨처음] .. [이전] 1 [2] [다음] .. [마지막]